일반인의 상식과 의사의 상식 by Hwan

이번 호 청년의사의 '醫와法'이라는 컬럼에 재밌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醫와法] 심정지 환자, CPR 않고 급히 전원한 사례라는 제목으로 내용은 생후 6개월된 아이가 호흡 부전으로 동네 정형외과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CPR 없이 바로 3~4분 거리의 인근 병원 응급실로 아이를 들고 뛴 것에 대한 과실 여부 내용입니다. 기사에 나온 법원의 판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심장마비로 뇌혈류중단 후 4~6분이 경과하면서 뇌신경세포에는 비가역적 허혈성 손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여 10분이 지나면 뇌신경세포는 모두 파괴되어 소생이 불가능해진다. 심폐소생술의 실시시간이 지연되는 만큼 소생가능성도 줄어들고, 즉시적인 대처를 하면 기본심폐소생술로도 소생가능성은 높아진다. 폐쇄된 기도의 개존이나 심실세동의 제세동법과 같은 중재술은 심장박동을 정상으로 환원시킬 수 있으나, 이러한 소생술의 실시시기가 늦어지면 질수록 그만큼 소생효과는 감소한다. 심정지로부터 심폐소생술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이 환자를 소생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일반적으로 심폐소생술은 4분 이내, 전문심장구조술은 8분 이내에 시작되어야 심정지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기본인명구조술만으로도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경우도 드물게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전문심장구조술이 시행되어야 환자를 소생시킬 수 있다. 과거에는 소아의 심정지시 예후가 보다 나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나쁘다고 보고되고 있다. 소아의 심정지 후 생존율은 13%에 불과하며, 병원외 심정지의 경우 병원내 심정지시 회복율 24%에 비하여 8.4%로 극히 불량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응급의료에관한법률(법률 제6147호로 전문개정되기 전의 것) 제6조는 ‘응급환자에 대하여 의료인은 다른 환자에 우선하여 진료하여야 하고 또한 진료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는 한편 ‘응급환자에 대하여 당해 의료기관의 능력으로는 그 환자에 대한 충분한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에는 지체없이 보건사회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환자를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송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종합병원이나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된 병원을 제외한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위한 장비를 갖출 의무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응급환자진료와 관련된 표시를 금지하고 있다(법 제10조).
A병원이 진료계약도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우선으로 아이를 살펴본 결과 동공이 산대되어 있고 호흡이 없었으며, 차가 막힌 상태이어서 직원을 통하여 아이를 업고 3~4분 거리에 있는 B병원으로 뛰어서 옮긴 것이다. 또한 A병원은 1차병원으로서,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되었다거나 응급처치를 위한 장비와 인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더구나 아이는 생후 6개월 남짓의 유아이므로 성인에 대한 응급처치 방법과 장비 자체가 다르고 보다 전문적인 인력을 요한다). A병원으로서는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상태였으므로 기본심폐소생술만으로 회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았던 데다가 기본심폐소생술의 경우에도 1인에 의한 경우보다 2인에 의한 경우 보다 효율적인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데 A병원에는 의사 1인 외에 다른 의사나 응급구조사도 없었다. B병원으로 뛰어서 아이를 옮기는 도중에 기본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는 없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서 이송하기 위하여는 119 등 응급의료기관에 연락하여 구급차 등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다시 응급의료기관으로 옮기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위와 같은 제반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들의 주장은 심폐정지 환자의 회복률에 기본심폐소생술의 시작시간 뿐 아니라 전문심폐소생술의 시작시간도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심폐소생술만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적은 아이에게 기본심폐소생술을 3~4분 일찍 시작하기 위해 전문심폐소생술의 시작시간을 상당한 시간동안 늦추라는 주장에 불과하여 받아들일 수 없다.

기사에서 강조한 내용은 의사의 주의의무위반에 관한 내용입니다. 주의의무위반은 보통 의사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나, 환자가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상식에 반하는지가 기준이 된다는 것인데, 좀 더 풀어 말하면 의사가 스스로 잘못이 없음을 입증할 때는 보통 의사의 의학 상식을 기준으로 하나, 만약에 의사가 스스로 잘못이 없음을 입증하지 못하고 환자가 의사의 잘못을 입증할 때는 일반인의 상식에 반하는지가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즉, 일반인의 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완화시켜주는 내용인데 실제 상황에서는 의료 행위가 일반적 상식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의료 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종종 나온다는 것입니다.

소아 생존의 고리

즉, 위 사례에서 본다면 심폐소생술을 한다면 충분히 살아날 것이라는 일반인의 상식과 달리 의학적으로 기본 인명구조술만으로 심정지가 발생한 환아를 소생시킬 가능성이 낮고, 기본 인명구조술을 실시하기 보다는 전문 인명구조술이 바로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한 것과, 시간 지체를 우려하여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며 이송할 수 있는 다른 이송 수단을 강구하지 않고 직접 들고 이송한 것 모두 과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죠. 여기서 보이는 것이 바로 일반인들의 상식과 의사들의 의학 상식 간의 괴리입니다. 평소에 접하는 영상 매체 등을 통해 심폐소생술의 긍정적인 결과가 너무 강조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상식을 심어주었고, 이로 인해 의료 분쟁이 증가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이런 내용을 실제 사례를 들어서 보여주고 있죠.

의학 드라마에 대해 여러가지로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이유에는 이런 사실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례로 뉴하트가 한참 유행할 때는 심폐소생술을 할 때 보호자들이 전기 충격은 왜 안 주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그러네요. 드라마 내용의 잘잘못을 떠나서 영상 매체가 일반인들의 상식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종합병원2에서도 외과 1년차가 응급의학과 스탭의 의견에 반해 심폐소생술을 하고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런 장면으로 인해 실제 응급실에서 보호자들과의 마찰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비단 의학드라마 뿐 아니라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노출되는 의학 상식들 중에 잘못된 지식으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의협과 같은 단체에서도 모니터링을 하고 정정을 위한 노력을 하겠지만, Web 2.0 시대에서 의학 블로거들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덧글

  • 햇비 2008/12/24 18:46 # 답글

    아, 그렇군요. 새로운 걸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청년의사' 하니까 괜히 반가운데요? 95년도에 도서관에 가서 '종합병원 청년의사들'이라는 책을 빌려읽었거든요. 청년의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군요. 그 당시 레지던트였던 분들이 지금은 전문의가 되셨겠죠. 아마 그분들이 가장 년차가 높았던 것 같은데. 맞을까요? :) 제 기억속엔 편집자 중 청년의사분 성함이 이왕준? 박재영? 두 분이었던 것 같은데 맞을지 모르겠어요.

    어렸을 땐 뭣도 모르고 의학도를 꿈꿨으나..-_-;
    이과쪽으로는 영 안 맞아서 포기하고 문과로 갔는데. 아주 가끔 아쉬울 때가 듭니다.

    Hwan님. 메리 크리스마스! 바쁘셔도 따뜻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 Hwan 2008/12/24 19:49 #

    이왕준 선생님이 발행인, 박재영 선생님이 편집국장으로 계시죠.

    햇비님도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연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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