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인턴 제도는 없애야 할까? by Hwan

메디컬투데이의 이동근 기자의 블로그에서 병원 인턴 제도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과연 인턴이 지금 하는 일이 뭔가부터 내가 인턴 때 뭘 배웠나라는 사실까지 생각해 봤다

일단 우선 인턴을 당장 없애도 종합병원이 돌아갈 수 있는가? 내 생각은 가능하긴 하지만 힘들다는 것이다. 인턴이 하는 일 중에 정말 잡스러운 일들은 굳이 의사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차트와 필름 찾는 것은 전산화의 힘으로 점점 사라져갈 뿐 아니라 하더라도 의무기록사와 간호보조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맞고, 의국에서 시키는 잡스러운 명단 정리 같은 사무일은 비서를 고용하여 하는 것이 맞다. 간혹 수술 스케쥴 조정이나 검사 등의 푸쉬, 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페이퍼잡들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간호사 출신의 전문 코디네이터를 고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병동에서의 일 중 채혈이나 정맥 주사를 인턴이 하는 경우가 있는데(이건 병원마다 다르다), 간호사들이 이를 대신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인턴이 하는 일 중에서 꼭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사실상의 단순 작업으로 일일히 전공의하가 하기 힘든 일들이 있는데 심전도, 동맥혈 검사, 간단한 동의서, 수혈할 때 피 확인, 남자 환자에 대한 도뇨관 삽입 등이다. 결국 이런 일도 전공의들이 하거나 법적인 문제가 없다면 가능하면 간호 인력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위의 예에서 보다시피 인턴이 이른바 잡일이 많을 수록 대체를 하기가 쉽지만, 의사로서의 일이 많을 수록 대체가 어렵다. 보통 의사로서의 일이 많은 것은 전공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흉부외과나 의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모자란 응급의학과 등이다. 흉부외과는 전공의가 아예 없는 병원이 많기 때문에 인턴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응급의학과는 언제든지 많은 환자가 밀려오거나 중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처하기 위한 충분한 인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 인턴이 없다면 전공의나 전문의를 늘려야 하나, 인력이 모자란 과는 대게 전공의의 지원률이 낮은 이유 때문이므로 인력을 충원할 길이 없다. 대체 인력으로 전문 간호사를 양성하는 방법이 있으나 아직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부족하고 현실적으로 제한적인 역할 받게 못한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바로 대체 인력을 고용하는데 드는 비용이다. 인턴의 연봉은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2000만원에서 왔다갔다 할 것이다.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어 법적으로 진료 행위를 할 수 있으며 하루에 24시간, 일주일에 7일 어떤 일을 시켜도 결국 할 수 밖에 없는 인력의 임금으로는 상당히 저렴하다. 더군다나 인턴은 정직원으로 계속 일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직으로 1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호봉이 올라가서 임금이 부담스러워질 염려도 없다. 이러한 인력을 대체하기 위하여 들어갈 인건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인턴의 근무 강도는 일반직의 2-3배가 넘기 때문에 적어도 인턴 한 명의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2-3명의 다른 직종의 직원을 채용해야 하고 임금 부담이 당장 2-3배 늘어날 뿐 아니라 정규직으로 뽑는다면 지속적인 임금 상승의 압박이 있다. 인턴 폐지는 병원 측에서는 정말로 생각하기 싫은 재앙일 것이다. 이건 수련병원으로 지정된 중소병원도 마찬가지다. 인턴 TO를 받아서 대학병원과 모자 협약을 맺고 인턴을 파견받는 병원에서는 이들이 병동 당직 및 응급실 1차 진료를 커버해 주기 때문에 이른바 별도의 당직의를 고용해야 하는 부담이 없다. 이러한 특혜(?)도 인턴 제도가 사라지면 같이 사라진다.

그러면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수련 제도로서의 인턴이 갖는 의미는 없는가? 물론 없지는 않다. 사실 어느 병원에서 인턴을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지만 인턴 과정을 밟은 의사와 인턴 과정 없이 1년을 보낸 의사와는 확실히 다르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응급실과 흉부외과, 내과 인턴 때는 상당히 의사로서 도움이 되는 많은 경험을 했지만, 정형외과, 진단방사선과 등에서는 비서 내지 정맥주사팀 정도 밖의 역할에 그친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순환 근무를 통해 내가 전공할 과목을 정하는데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한 경험이 꼭 인턴이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냐는 것이다. 학교마다 임상 실습 기간을 늘리고 있고, 전문대학원이 늘어나고 있는데 외국과 같이 2년 이상의 임상 실습이 일반화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커리큘럼에서라면 학생 때 실습을 돌면서 필요한 경험들을 충분히 쌓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과의 인턴이 되어 비서로 일하는 것보다는 학생으로서 그 과의 실습을 돌 때 오히려 자신이 얻는 지식도 많고 전공에 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충분한 임상 경험을 통해 인턴 과정을 거친 것보다 더 충분히 의사로서의 능력도 키울 수 있다.

결국 의과 대학의 커리큘럼이 임상 실습이 충분하도록 바뀌고, 병원 협회의 현실적인 반대를 무마할 수 있을만큼 수가를 현실화하고, 현실화된 수가를 의료 보험료에 반영할 수 있을 정책 입안자의 결단이 있어야 인턴 제도는 없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우리 나라의 사람들은 마치 군복무를 하듯 의사들이 1년씩 인턴으로 일해서 아껴지는 병원 비용으로 낮은 의료보험료의 혜택을 받는 건가? ;)

※ 사진 : 내가 인턴 때 파견갔던 강화 병원에서... 역시나 싼 임금에 인턴들이 응급실 당직을 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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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동글로그 2007/12/09 07:34 # 삭제 답글

    제글에 보여주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알고 싶었던 문제들이 이 포스트로 인해 정확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원레 제시하고 싶었던 문제는 현실적으로 인턴들에게 인턴제도가 어떤 것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만.... 1년을 보낼 것이라면 좀 더 효율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됐으면 좋겠다느 생각이 들더군요.
    관심과 좋은 조언,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 Hwan 2007/12/09 08:43 # 답글

    너무 장황하게 글을 썼는데 결국은 의대생의 임상 실습의 강화와 대체 인력의 확보로 현재의 인턴제를 폐지하고 인턴을 병원에서 일괄로 뽑는 것이 아니라 내과부, 외과부 등 몇 가지 section으로 나누어 뽑아 그 분야를 전공할 사람이 미리 선택해서 유사 분야를 순환 수련하게 하고 이후 전공 과정을 세분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의 미국의 수련 제도와 매우 유사하죠.

    결국 현재의 제도는 우리나라 의료 비용 감축을 위한 일종의 의무 봉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수련 과정에 대한 의견은 한참 쓸 말이 많으니 기회가 되면 포스트를 올려 보겠습니다.
  • moiya 2007/12/09 15:20 # 삭제 답글

    못본 포스팅이 3개나 있다니...
    놀라운 업데이트 속도 -_-;;
  • 고수민 2007/12/09 22:50 # 삭제 답글

    미국의 경우 인턴이 있지만 레지던트 1년차를 인턴이라고 부릅니다. 대개의 경우 하는 일은 그냥 의사의 일입니다. 뉴욕은 예외인데 미국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대개는 잡일을 하는 사람(간호사, 오더리, 간호보조원등등)이 따로 있어서 인턴은 의사의 일만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날이 빨리 와야 할텐데요.
  • Hwan 2007/12/10 00:56 # 답글

    미국의 경우는 아무래도 의료비가 비싸다 보니 인력 고용의 여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턴이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좀 더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에 의사가 할 일이 아닌 것을 억지로 시키지 않는 것도 있지 않을 것 같고요.

    그러고 보니 군대도 우리 나라는 징병제고 미국은 모병제군요... ^^;
  • 악마라네 2007/12/10 13:52 # 답글

    현행과 같은 인턴제도는 별 의미도 없고,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건 사실이 아니던가요? ^^

    선생님 의견에 기본적으로 동의 합니다만, 문제는 다른 분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박탈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요. ^^
  • Hwan 2007/12/11 05:04 # 답글

    개인적으로는 실습 기간이 2년은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3 이후는 강의실에서 수업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리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도는 실습이거나 발표나 레포트 위주의 실습이 아닌 실제 진료 과정에 참여하는 실습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쓸데 없는 인턴 제도를 없앨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죠.

    인턴 제도도 모든 과를 주어진 스케쥴대로 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공할 분야와 관련 있는 분야만 돌 수 있게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고 어느 카테고리를 돌았냐에 따라 나중에 지원할 수 있는 과를 정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추가로 전공의 과정도 처음부터 나뉘는게 아니라 몇개 과가 묶인 통합 과정 후 3년차 쯤에 세부적으로 과를 정해 가는 식이 좋다고 봅니다.
  • 2007/12/11 08:2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 2010/10/15 19:35 # 삭제 답글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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