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별곡(漢城別曲 - 正) by Hwan

드라마를 보기 전에...

역사의 진행이 늘 순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뒤돌아 보면 수 많은 반역사적인 움직임을 겪으면서 역사는 이루어져 왔고 후세의 역사를 배우는 사람으로서는 그러한 반역사적인 순간에 대한 아쉬움으로 있을 수 없는 가정을 해 보곤 한다. 예를 들어 인조 반정이 실패하고 광해군이 정권을 유지했으면 병자호란은 없지 않았을까라던가 효종이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았다면 좀 더 넓은 북방의 영토를 얻지 않았을까하는 등이다. 그러한 아쉬움은 역사 소설의 좋은 소재가 되곤 한다.

KBS 드라마 한성별곡(漢城別曲 - 正)도 조선 후기 개혁적 군주였던 정조의 독살설을 소재로 하고 있다. 흔히들 영정조 시대를 묶어서 탕평책을 떠올리며 조선 후기의 개혁 시대로 떠올리곤 하나 영조와 정조는 정조의 즉위 전부터 그 처지가 전혀 다른 왕이었다. 잘 알다시피 정조의 아버지는 사도세자이며 사도세자가 28세 때 뒤주에서 죽은 것은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과 반목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영조에게는 사도세자 이외의 살아 있는 왕자가 없었고 사도세자의 아들 중 적출인 정조는 사도세자가 죽을 때 11세의 나이로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매달려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으니 영조 이후의 정조의 즉위를 당시 집권층이 노론이 반길리가 없었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의 묵인과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노론 김한구의 딸)도 관여한 바가 컸으니 세손이 된 순간부터 항상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태였다.(심지어 정조의 작은 외조부인 홍인한은 노론 벽파에 가담하여 세손인 정조를 몰아내려는데 앞장선다. 홍봉한은 이후 눈치 빠르게 시파로 세손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지만...)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할아버지인 영조의 보살핌으로 험한 난관을 이겨내고 즉위를 하지만 이후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숙청과 외척들에 의한 3번의 정조 암살 시도가 일어나면서 노론과 정조는 국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노리는 정적의 관계가 되어 간다. 하지만 사도세자와 관련된 논의를 하려고 하여도 선왕인 영조의 결정이고, 자신의 외조부와 대비가 관련되어 있다 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현륭원, 현 융건릉)을 화산(花山, 드라마에서도 화산으로의 천도 이야기가 나온다.)으로 옮기고 그 곳에 장용외영을 설치하여 군사를 주둔시키며 수시로 능행을 하여 자신의 권력 기반의 하나로 삼았다.

그러나 아무리 왕권을 위해 노력해도 대부분의 관직이 노론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니 정조 자신의 힘을 키울 필요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규장각을 설치하여 새로운 젊은 관료 양성에 나서면서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남인과의 연대를 꾀한다. 남인이 노론에게 밀려 몰락한 것은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인한 것이다. 즉 정조와 남인은 사도세자라는 끊을 수 없는 연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이는 유명한 '영남 만인소' 사건으로 알 수 있다. 정조 24년 5월 30일 연석에서 정조는 남인을 정승으로 등용하겠다는 뜻을 비추게 되는데 불과 20여일 후 정조는 급사한다.

한성별곡은 이러한 정조 24년을 배경으로 한다. 보수 정권인 노론의 뜻에 반해 개혁 정치를 피려고 하나 신하들에 의해 번번히 반대에 부딪히고 그 생존조차 위협을 받는 군주인 정조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젊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정조의 독살설에 녹여 내어 만들어낸 이야기다.

드라마 내용

이 드라마의 부제는 바로 正 이다. 이야기의 주요 인물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신념과 행동에 대해 옳은 것인지 반문을 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구는 군주와 그 측근, 그리고 젊은 주인공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이 있으나 생각하는 길은 조금씩 다르고 그로 인한 갈등과 여려 현실들과의 마찰들에 고민한다. 이 드라마가 역사 드라마이자 정치 드라마로서 보여주는 갈등은 여기서 나온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주인공들이지만 각자 자신의 처지와 현실에 따라 새로운 조선을 이루고자 하는 군주를 돕기도 맞서기도 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소망을 가로 막는 큰 두개의 현실은 주인공의 신분과 사랑이다. 아버지의 역모로 관비로 전락한 나영은 양가집 규수로서는 모르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고 왕을 암살하고자 하는 비밀 조직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예판의 아들이지만 서자도 아닌 얼자(양반과 노비 사이의 자식) 출신인 상규는 자신의 신분의 한계로 인해 세상을 등지고 포도청 군관일을 하고, 양만오는 이조참판인 나영의 집의 종노릇을 하다가 양반 중심의 세상이 싫어 살주계에 몸을 담고 나중에는 시전의 행주가 되어 돈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려 하지만, 사농공상의 마지막인 상인은 어디서나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박상규와 양만오가 오직 새로운 세상을 위한 소망만 있었다면 자신의 위치에서도 그럴 기회가 있었겠지만 이 둘은 세상사에 질린 자신들을 구원해준 나영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크다. 이 둘은 왕의 암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나영을 구하려고 하고 이러한 사랑을 앞세우다 보니 그들의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영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에 왕을 암살하는 핵심 역할을 하며 왕에게 점점 접근해 가고, 상규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나영의 안전을 걱정하여 진실을 밝힐 수가 없다. 역모를 간접적으로 돕는 만오 역시 자신의 위치를 위태롭게 만들면서까지 나영의 안위를 우선시하고...

역사를 통해 이 드라마의 결과는 누구나 알고 있다. 정조는 한참 일할 나이에 급사하고 노론 벽파의 정권은 정조 이후에도 계속된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 그리고 그들이 생각한 옳은(正) 길도 과연 무너질까?

드라마를 보고 난뒤

8부작이라는 짧은 시간의 드라마이면서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 그리고 사전 제작이라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제작 시스템을 시도했으나 시청률만 본다면 한자리 수의 시청률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짧은 시간 안에 이야기를 담아내어 박진감 넘치는 전개는 좋았으나 처음부터 시청하지 않으면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기 힘든 것이 우선 가장 큰 문제일 듯 싶다. 즉, TV 드라마로서는 시청자에게 그리 친절하지 못했다. 역시 짧은 시간 때문이랄까... 전체적인 스토리의 라인은 흡인력이 있으나 연쇄 살인으로 시작하여 왕의 암살 음모까지 파헤치는 스토리로서는 디테일한 부분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추리물의 성격을 잘 살리려면 주요 인물들의 모티브와 액션이 명확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웬지 그런 면이 부족하다. 이 순간 저 인물이 왜 이런 결정을 할까가 드라마가 종영되면 좀 더 명확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찝찝한 면이 있다고 해야 하나... 결론이 정해져 있는 역사물이라는 것도 그런 면에서 단점일지도 모르겠다.

신인급 연기자들의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들의 연기가 드라마의 흠은 아니다. 오히려 캐릭터의 성격에 맞게 캐스팅이 잘 되지 않았나 싶다. 곽정환 PD의 스타 연기자들을 캐스팅하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제작 스탭에게 돌리고 싶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스타 연기자가 드라마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드라마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시청률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래도 명품 사극이라는 호평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는 캐스팅이라고 본다. 결정적으로 이나영 역의 김하은은 딱 내 스타일이다. -_-;;

최근 사극에 있어서 미장센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것 같은데(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이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비교적 화려한 복식과 계절에 따른 아름다운 자연 경관들로 시청하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역시 사전 제작의 힘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던 사극 '주몽'도 방영 일자에 맞추기 위해 고증은 커녕 어이 없는 씬들로 욕을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전 제작의 장점이 잘 살아난 드라마로서 향후 제작되는 다른 드라마들의 귀감이 되지 않을까? (너무 오버인가?)

종영 후에도 느낌이 오래가는 드라마다. 꼭 한 번 보길 강추.


덧글

  • eslife 2007/08/09 23:39 # 삭제 답글

    제 홈페이지에 걸어 두신 트랙백을 타고 왔습니다.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네요(아 부럽습니다 )
    영조, 정조, 사도세자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역사적 지식을 가지고 이 드라마를 봤으면 좀더 이해가 깊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멋질 글 잘 봤습니다 .^^;
  • Hwan 2007/08/10 14:03 # 답글

    해박한 지식이랄꺼까지야... 책 몇 권 뒤적거려 찾아 끄적댄 건데요... ^^;

    개인적으로 역사물을 좋아하다 보니 배경이 되는 역사에도 관심이 가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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